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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주/이집트 (Alexandria, Alexandria/Egypt)
  • 이집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이집트 북부지역의 지중해와 면해 있어 지중해의 문화와 유산을 전 세계에 비추는 횃불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이집트의 대표 항구도시로 알렉산드레이아(Alexandreia) 또는 이집트어로는 알이스칸다리야(al-iskandarīyah)라고도 불립니다. 카이로 북서쪽으로 약 180km 지점에 있으며 지중해 연안이란 지리적 요건으로 기후풍토가 좋아 왕제시대에는 여름 수도였고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휴양•관광지입니다. 옛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의 수도로서 수많은 유적지를 가지고 있고 세계7대불가사의 중 하나인 등대와 도서관이 있으며 클레오파트라와 줄리어스 시저, 마크 안토니와 옥타비안의 비극이 연출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크루즈 기항지로는 수도 카이로와 기자(피라미드)의 관문 역할을 합니다.
  • 1. 기자(Giza)
  • 이집트하면 떠오르는 피라미드, 그 중에서도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3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곳입니다. 수도인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세번째로 큰 도시이며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위치합니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는 광대한 사막 속에 고립무원의 모양으로 서 있는 모습이 상상되지만 실제로는 기자 교외의 집들과 접해 있다보면 홀연히 나타나고 서로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대충 훑어보아도 3시간 가량이 소요되므로 차를 타거나 낙타를 이용해 이동해야 합니다. 반대측의 남서쪽 구릉 위에서면 3개의 피라미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지가 있으며 항상 관광버스로 가득 차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 쿠푸왕 피라미드

    기자의 입구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피라미드로 이집트의 4대 왕조인 ‘케호프’ 라고도 불리는 쿠푸왕의 무덤입니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 중 하나로 이집트 전 지역에 존재하는 70여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여 ‘대 피라미드’라고도 불립니다. 엄청난 규모와 그 규모만큼이나 복잡한 내부를 지닌 인류 최대의 건축물로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손꼽히며,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있어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유물이기도 합니다. 기원전 2551-2528년에 높이 147m로 지어 졌으나, 현재는 꼭대기 부분이 파손되어 높이 137m가 되었으며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사용된 돌은 1개의 평균무게가 2.5t으로 가장 큰 돌은 무려 15~30톤에 이릅니다. 돌 230만여개를 사용해 정교하게 쌓아 올려 만들어졌는데 10 만 명의 인부가 20년 동안의 세월을 두고 건축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건축할 때에는 외장용 화강암으로 표면을 매끄럽게 마무리하여 돌과 돌 사이의 간격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온갖 풍화와 도굴로 인해 파헤쳐지고 표면이 벗겨지면서 울퉁불퉁한 돌들이 드러나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건축 방법에 대한 의문점은 아직도 해명되지 않아 그 신비감이 더 합니다. 피라미드의 내부는 긴 터널을 지나 대회랑과 왕의 방, 왕비의 방, 내려가는 통로, 올라가는 통로, 수평 통로, 환기통 등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안은 좁고 가파릅니다. 현재 관람 입구로 사용되는 곳은 9세기에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문 왕이 도굴을 위해 파헤친 곳입니다.


    - 카프레왕 피라미드

    기자의 ‘3대 피라미드’ 중 두 번째로, 쿠푸왕의 피라미드 바로 옆이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중앙에 위치합니다. 쿠푸왕의 아들인 카프레 왕이 아버지와 같은 장소에 비슷한 규모의 피라미드를 만든 것이며 높이 143m로 건축됐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피가 벗겨져 현재는 높이 137m이며 높은 지대에 세워져 있어 보는 위치나 각도의 따라 가장 높은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쿠푸왕의 피라미드보다 약간 작은 규모입니다. 3대 피라미드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하고 표면의 상단과 하단에 외장용 화강암이 일부 남아 있어 이집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고 있는 피라미드입니다. 피라미드의 앞쪽 신전과 동쪽에 피라미드의 수호신인 거대한 스핑크스까지는 참배 도로로 이어져 있습니다.


    - 멘카우레왕 피라미드

    3대 피라미드 중 가장 안쪽에 위치하며, 다른 피라미드의 절반 정도라고 할 만큼 규모가 작습니다. 쿠푸왕의 손자인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로 높이는 65m이며 훼손이 가장 심한 피라미드이며 신전도 지금은 폐허로 변했습니다. 3개 피라미드 중 유일하게 무료로 입장할 수 있지만 안쪽까지 찾아오는 관람객이 적어 고요한 정적이 흐르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국보급 유물인 멘카우레 왕의 석상은 훌륭한 상태로 이집트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  스핑크스
    피라미드만큼이나 유명한 유물로 카푸레 왕의 피라미드 앞을 수천년이 넘도록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머리와 사자의 몸 형상을 하고 있으며 전체 길이 약 70m, 높이 약 20m, 폭 약 4m에 달하는 거대한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그대로 조각한 작품으로, ‘공포의 아버지’를 뜻하는 아랍어 ‘아부 엘-홀(Abu el-Hol)’이라 하며 태양신의 아들이라 불립니다. 아랍군의 침입 후에는 코가 깎여 나갔고, 영국군에 의해 수염이 무참히 뽑혀 나간 현재의 모습에서는 공포스러운 모습은 찾아 볼수 없습니다.(뽑혀 나간 수염은 런던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집트 정부와 반환교섭 중에 있습니다.) 앞다리 사이에는 꿈의 계시로 인해 모래 속에 파묻힌 스핑크스를 발굴하고 그 꿈의 내용을 기록한 투트모세 4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해가 지면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효과음을 사용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등장시키는 소리와 빛의 쇼가 매일 밤 진행되어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습니다.
  • 2. 카이로 (Cairo)
  • 이집트의 수도이자 동,서양,아프리카 3개의 문화 교차 지점이며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입니다. ‘승리자’란 뜻을 가진 아라비아어 ‘카히라(Kahira)’라고도 불립니다. 1,0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동시에 아프리카 대륙의 최대 근대도시로 도심 중앙을 뚫고 지나가는 나일 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 유명합니다.


    -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Marthaf El Masri)
    이집트 7,000년의 역사가 집대성 되어있는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존재 자체가 인류에게 내려진 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카이로의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부에는 실제 사람과 새의 미이라, 도자기, 장신구 등 6,000년 전에 사용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고대의 무덤을 실물 크기로 복원해놓아 그 내부를 걸어 다닐 수도 있습니다. 전시 유물만큼이나 멋진 2층 건물은 1902년 프랑스인 마르셀 두르그농이 설계하여 1922년 완성한 것으로 박물관의 시초는 프랑스인 이집트 고학자 마리에트가 장식하였습니다. 1층에는 시대 왕조별로, 2층에는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는데 전시품들은 선사 시대부터 고대 이집트 왕조의 유산을 중심으로 주요 시대 별로 구분되며, 전체 유물의 총 수는 12만 점 이상입니다. 유물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려면 3일 이상이 소요되므로 방 번호를 따라 보고싶은 유물을 골라보도록 합니다. 유물 중에서도 단연 가장 많은 이가 찾는 곳은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발굴한 투탕카멘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2층입니다. 19세의 소년 왕에게 바쳐진 엄청난 양의 부장품들과 황금 마스크, 옥좌, 침대, 황금 가면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2층 오른쪽 구석에는 미이라 11구를 안치한 특별 전시실이 있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들어갈 때는 사진기 사용권을 구입해야하며, 플래시 사용은 안되고 미이라 실은 촬영을 할 수 없음을 유의합니다. 매주 금요일 11시 15분에서 13시 30분까지는 예배를 위해 휴관합니다.


    - 아기 예수 피난 교회(Church of Absarga)
    아기 예수 피난 교회는 카이로 시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수님 일가가 거처했었다는 동굴 위에 세워져있습니다. 교회의 건축 시기는 4세기 말 또는 5세기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명 ‘아브사르가의 교회’라고도 하는데, 이는 4세기 초 순교한 성 세르기우스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본당 옆으로 2개의 복도와 3개의 지성소가 있고 예수님의 12 제자를 상징하는 12 기둥 중에서 가롯 유다를 상징하는 기둥은 붉은색 대리석으로 되어있습니다. 본당 중앙 밑으로 2,000년 전 예수의 일가가 거처 했었다는 동굴이 있는데, 현재는 물이 차 있어 입구에서 들여다 볼 수 밖에 없습니다.


    - 나일강(River Nail)
    나일강의 근원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시작하여 열대 초원을 흐르는 백나일과 에티오피아 산악의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들이 모여 이루는 청나일이 수단의 카루틈 남방에서 합류하여 이집트의 젖줄이 되는데 여기부터는 전혀 유입되는 줄기 없이 곧장 지중해까지 북으로 흘러갑니다. 아프리카 중부 고원의 봄비는 몇 달 후 이집트를 범람하는 큰 홍수로 변하는데 대개의 홍수는 수해를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나일강 홍수는 7월에서 10월에 걸쳐 이집트의 완만한 사막을 서서히 흘러 가면서 온갖 수목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뭇 짐승들이 서식할 수 있는 비옥한 토지를 만듭니다. 수백 킬로미터를 흘러 온 나일강은 카이로 북방에서 둘로 나뉘어 ‘나일 델타’라는 넓은 대평원을 만들고 이렇게 형성된 땅이 한 때 세계의 곡창이라고 알려진 비옥한 땅인데, 이 것은 홍수가 싣고 오는 아프리카 내륙 지방의 부엽토가 서서히 침전 되면서 자연의 퇴비를 깔아주며 생기는 결과입니다. 이와 같이 해마다 부엽토를 더해가면서 이 비옥한 땅은 검은 색을 띠게 되었고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검은 땅이란 뜻의 케미(KEMI)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나일강은 자연의 선물을 남겨주면서 서서히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약 6,500 Km의 장구한 여행을 마칩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연중 행사처럼 매년 어김없이 범람하여 수해가 아닌 수해를 안겨주는 나일강을 모든 것의 근원으로 보았고 또한 숭배하였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계절은 3계절로 되어 있는데 이 것 역시 나일강의 범람과 연관된 것으로, 홍수가 나서 델타 지역이 물에 잠겨 있는 7-10월은 농한기, 물이 빠져나간 11-2월은 농번기, 그리고 3-7월은 추수기입니다. 이렇게 수천년간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을 사람의 힘으로 조종해보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되어서 19세기 초 케네디 모하메드 알리(Khedive Mohammed Ali)는 이집트 현대화 작업을 시작하여 나일강을 알렉산드리아의 식수원이 되게 하였고, 카이로 북쪽에 갑문장치를 설치하여 많은 농토를 확보하기도 하였습니다. 1972년에는 아스완 하이 댐을 만들어 매년 범람하던 나일강은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강변의 많은 땅들은 전천후의 농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일강의 선물인 천연 퇴비는 영영 잃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 모세 기념 교회(Ben Ezra Synagog)
    처음에는 알무알라카 교회의 부속건물로 AD 4세기에 지어져 AD 9세기까지는 ‘미카엘 교회(성 미카엘교회)’ 또는 ‘가브리엘 천사 교회’로 불렸습니다. 이집트의 이슬람 왕조인 이븐 툴룬 왕조(AD 868~905)의 이집트 제 56대 교황(주교) 미카일 3세 때 아흐메드 이븐 툴룬이 ‘이븐 툴룬 모스크’ 건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독교도들에게 금 2만 디나르의 고액인 세금을 부과하자 몇 개의 예배당을 매각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로 유대인들이 매입하여 회당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알하킴(AD 996 ~ 1021) 때에 파괴되고 AD 1115년 예루살렘에서 랍비 아브라함 벤 에즈라가 방문한 이후 재건하였기 때문에 이 이름이 유래되었고, 당시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까닭에 아라베스크 문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후 회당은 현대의 아랍,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심화되던 AD 1965년 까지 천여년 동안 유대인 공동체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이집트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의 수는 100여명 정도이고 이 들 중 소수가 시내 중심지의 샤리아 아들리(아들리가)에 있는 회당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회당이 다시 지어진 당시에는 주위에 29개의 사원과 20개의 예배당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133,000명의 무슬림들과 10,000명의 콥틱 기독교인, 42명의 유대인들이 올드 카이로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종교가 서로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공동체처럼 살았다고 기록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세워졌던 최초의 회당은 BC 350년경에 건설되었며 당시의 이름은 ‘선지자 예레미야 시나고그’라 불렸으며 BC 30년경에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아랍에 의해 로마의 통치자로부터 탈환된 이 지역에 콥틱 교회에서 새로이 예배당을 지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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